반도체 장비 국산화율 20%…“韓, ‘칩4’ 참여해야”

시간 입력 2022-11-03 18:03:06 시간 수정 2022-11-03 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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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반도체 장비 교역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
지난해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 약 146조원
중국, 반도체 장비 수입 1위…이어 대만·한국 순
韓, 지난해 對미·일·네덜란드 수입 의존도 77.5%
“미국 주도 칩4 참여해 안정적 공급선 확보해야”
반도체 장비 국산화 위한 R&D 투자 확대 지적도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3회 반도체대전'에 전시된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선도 기업을 보유한 우리나라가 반도체 장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칩4(Chip4)’ 동맹에 가입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아울러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R&D)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3일 한국무역협회(무협)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최근 반도체 장비 교역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는 1025억달러(약 145조5603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 711억달러(약 100조9691억원) 대비 44.2%나 증가한 수치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은 최근 세계 각국의 설비 투자 확대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반도체 장비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020년부터 현재까지 연평균 28.6%의 높은 성장률을 나타냈다. 현 추세라면 올해 말에는 1175억달러(약 166조7443억원), 내년 1208억달러(약 171조4998억원) 수준으로 시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반도체의 원재료인 실리콘 웨이퍼를 가공하는 데 쓰이는 웨이퍼 제조·가공 장비의 경우, 올해 처음으로 시장 규모가 1000억달러(약 141조9100억원)를 상회하고, 내년엔 1043억달러(약 148조121억원)까지 증대될 것으로 관측됐다.

이같은 성장세를 바탕으로 반도체 장비 교역액도 늘고 있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 장비 교역액은 2020년 988억달러(약 140조2268억원) 대비 2.4% 오른 1012억달러(약 143조6332억원)로 나타났다.

한국의 국가별 반도체 장비 수입 동향. <사진=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반도체 장비를 주로 수입하는 국가는 중국·대만·한국 등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액은 386억달러(약 54조7734억원)로 1위였고, 대만 298억달러(약 42조2922억원), 한국 250억달러(약 35조4725억원) 순이었다.

반대로 주요 수출국 1~3위는 일본·미국·EU(네덜란드)다. 지난해 일본의 반도체 장비 수출액은 312억달러(약 44조2977억원)에 달했고, 미국 284억달러(약 40조3223억원), EU 265억달러(약 37조6406억원) 등이었다.

반도체 장비 수출국 3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수입 의존도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일본·네덜란드에 대한 한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 의존도는 지난해 77.5%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8년 82.2%를 기록한 이래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이긴 하나 여전히 압도적인 수준이다. 반도체 장비 주요 수입국인 대만(70.6%), 중국(56.2%)과 비교하더라도 매우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반도체 장비 가운데 웨이퍼 장비 수입 비중은 일본이 가장 컸다. 그 비중은 무려 69.2%나 됐다. 2019년 7월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로 인해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 필요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에 힘써 온 지도 3년을 훌쩍 넘겼으나 여전히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전공정 장비는 네덜란드(35.0%), 기타 장비는 미국(29.9%) 등에서 가장 많이 수입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평택캠퍼스 생산라인. <사진=연합뉴스>

대외 불확실성으로 반도체 장비 확보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반도체 장비를 원활하게 조달하기 위해서는 동맹국과의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반도체 장비를 수입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과 그 동맹국에 편중돼 있다”며 “이를 감안할 때 우리나라는 미국·일본과 함께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동맹 칩4에 참여해 안정적인 반도체 장비 공급선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근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를 시행하면서 미·중 간 교역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가운데 우리나라가 당면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 간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은 연평균 29.6%씩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역대 최대치인 386억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 상반기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 증감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6%로 하락 전환했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조치 탓이다.

첨단 장비 도입이 어려워진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현재 14nm(나노미터) 수준에 정체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nm는 100억분의 1m를 뜻한다.

한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입 추이. <사진=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일본·네덜란드 등 반도체 장비 강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첨단 장비를 선점해 중국과의 격차를 더욱 벌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중국을 대체할 유력한 반도체 장비 수출국으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주요 고객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자리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최첨단 장비인 ‘하이 NA’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 등을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장비는 초미세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장비로, 대당 4000~5000억원을 호가한다.

이를 의식한 네덜란드 장비 업체 ASML은 발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ASML은 경기 화성시에 2025년까지 2400억원을 투자해 EUV 장비 트레이닝 센터 등 반도체 장비 클러스터를 구축 중이다.

국내에 반도체 장비 클러스터가 확대되면 반도체 생산 능력에 비해 부족했던 장비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장비 수리에 소요되는 비용과 생산 지연 시간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국내 부품·모듈 공급사의 실적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상지 무협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칩4 동맹 참여 의사를 확실히 밝히고,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기회로 삼아 중국과의 격차를 벌려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나아가 반도체 장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칩4에 참여뿐만 아니라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도 병행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장비 자립화율은 2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장비 시장의 기술 장벽이 매우 높아서다. 그럼에도 80%에 육박하는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선 R&D를 통한 국산화율을 높이는 것이 절실하다는 게 보고서의 진단이다.

정부도 관련 정책을 마련하며 반도체 장비 국산화에 힘쓰는 모습이다. 정부는 2026년까지 향후 5년 간 340조원을 투자해 기술 개발, 설비 투자 등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이에 2030년까지 반도체 소부장 자립화율을 5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반도체 정책의 핵심인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 이른바 ‘K-칩스법’은 올 8월 법안 발의 후 아직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원회에 안건 상정조차 못하고 있다. 이에 반도체 장비 국산화 목표 달성은 하루하루 지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전면에 내세우고 인력 양성과 투자 혜택 등 각종 지원책을 약속한 만큼 이젠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때다”며 “조속한 입법을 통해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살아날 수 있는 정책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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