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삼성 위법 쟁의 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대부분 인용
“작업 시설 손상 방지·웨이퍼 변질 방지 위한 인력 투입해야”
초기업노조에 시설 점거 등 금지…위반 시 1일당 1억원 지급
노조 파업에 법적 제약 …18일 간 총파업 동력 떨어져
‘합법적 쟁의권 확보’ 노조, 파업 강행 가능성은 여전
이재명 대통령 “노동권 만큼 기업 경영권도 존중돼야”
삼성전자 노조가 예고한 대규모 총파업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노조를 상대로 법원에 제기한 ‘위법 쟁의 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이 대부분 인용됐다. 재판부는 안전 보호 시설 정상적 유지 및 운영,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 변질 방지 등을 위한 인력을 ‘평상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노조의 주요 시설 점거 행위 등도 금지했다.
법원이 사실상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파업에 따른 막대한 손실을 예고하며 사측을 압박하려던 노조의 파업 동력은 빠르게 힘을 잃고 있다. 다만 합법적 쟁의권을 확보한 노조가 재판부의 결정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여전히 파업을 강행할 수 있다는 점은 변수로 지목된다.
수원지법 민사31부(신우정 부장판사)는 지난달 16일 삼성전자가 삼성그룹초기업노동조합(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등 2개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 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18일 대부분 인용했다.
먼저 법원은 안전 보호 시설을 비롯한 주요 시설 손상 방지, 제품 변질 방지를 위한 인력 투입을 평상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채무자(노조)는 쟁의 행위 기간 중 안전 보호 시설이 평상시(평상시의 평일 또는 평상시의 주말·휴일)와 동일한 정도의 인력, 가동 시간, 가동 규모, 주의 의무로써 유지·운영되는 것을 정지·폐지 또는 방해하거나 조합원들에게 그와 같은 행위를 하게 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특히 “채권자(삼성전자)가 보안 작업으로 주장하는 작업 시설 손상 방지 작업, 웨이퍼 변질 방지 작업 등이 쟁의 행위 전 평상시와 동일한 정도의 인력, 가동 시간, 가동 규모, 주의 의무로써 수행되는 것을 방해하거나 조합원들에게 그와 같은 행위를 하게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쟁의 행위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고, 쟁의 행위가 종료되면 바로 업무에 복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노동조합법(노조법)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려면 보안 작업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 작업 시설의 손상 방지 및 원료·제품의 변질·부패 방지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수행돼야 한다”고 짚었다.
법원 판결에는 반도체 공정의 특수성과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도 반영됐다. 재판부는 “초정밀 미세 장비에 해당하는 반도체 시설의 경우, 설비가 한번 손상되면 수리를 거쳐 다시 재가동 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므로, 쟁의 행위 기간 중 시설 손상 방지를 위한 작업은 평상시와 같은 정도로 수행돼야 한다”고 봤다.
또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내에서 채권자가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고려할 때, 시설 손상 및 원료·제품의 변질 내지 부패로 인한 첨단 칩 생산 차질은 전방 산업의 생산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같은 손해나 위험은 사후적인 금전 배상 등을 통해 회복될 수 없는 현저한 손해 내지 급박한 위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법원은 초기업노조와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에 대해 시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행위와 시설에 잠금 장치를 설치하거나 근로자의 출입을 방해하는 행위 일체를 금지했다. 다만 전삼노와 우하경 전삼노위원장 직무대행에 대해선 점거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금지를 명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를 위반할 시 1일당 노조는 각 1억원, 노조 집행부 대표는 각 1000만원씩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렇듯 삼성전자가 신청했던 가처분 내용이 대부분 받아들여지면서, 노조의 총파업으로 인한 생산라인 중단 같은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됐다.
당초 삼성은 총파업 과정에서 불법 쟁의 행위가 발생할 경우, 생산 차질을 넘어 대형 안전 사고와 인명 피해가 염려되고, 장비 손상 및 원료 폐기로 인한 대규모 손실, 글로벌 반도체 생산 차질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총파업으로 인해 반도체 생산라인이 멈출 경우, 고가의 설비가 손상돼 사업 재개 시점이 연기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반도체 제조 공정 특성상, 조업을 중단한 후 다시 재가동하게 되면 공정 품질을 보증하기 위한 백업 절차가 복잡해 생산 정상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웨이퍼를 전량 폐기해야 할 수도 있다.
이를 이유로, 삼성은 웨이퍼가 손상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인원이 총파업과 무관하게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생산 시설 점거, 쟁의 행위 참여 시 협박 수단 사용 등 불법 쟁의 행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해 왔다.
이날 법원이 삼성전자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 당장 노조의 파업에도 법적인 제약이 가해지게 됐다. 이는 노조의 사측 압박 수단이었던 파업 동력을 약화시킬 공산이 크다.
그간 노조는 총파업에 따른 피해 규모가 엄청날 것이라고 회사를 겁박한 바 있다. 최 위원장은 “오는 21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18일 간에 걸친 대규모 총파업 기간 동안 야기될 30조원의 공백은 절대 가볍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업계 안팎에선 노조의 파업으로 주요 시설 및 웨이퍼 변질 등에 따른 손실이 무려 100조원을 웃돌 수 있다는 비관론마저 제기됐다.
그러나 재판부의 이번 결정으로 노조의 파업에 따른 피해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은 피할 수 있게 됐다. 결국 노조가 주장했던 삼성전자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되면서, 노조의 총파업 동력 또한 빠르게 사그라지는 모습이다.
다만 합법적 쟁의권을 갖고 있는 노조가 예고대로 총파업을 강행할 경우, 이를 차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법원의 판단이 일부 핵심 인력에 국한된 것이어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조합원은 파업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 판결의 영향을 받는 필수 인력을 단순 계산해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직원 수 7만8064명 중 5~10%인 3903~7806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해당 인력을 빼더라도 약 7만명은 노조 파업에 참여할 수 있다.
더구나 노조는 현재까지 총파업 참여 의사를 밝힌 조합원이 4만7000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최 위원장은 “현재 상황에서 (총파업에는) 5만명 이상이 참여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한편 삼성전자 노사는 21일로 예고된 대규모 총파업을 사흘 앞두고 극적으로 추가 사후 조정 협상에 돌입했지만, 서로 입장차만 확인한 채 합의에 실패했다. 그러나 노사는 총파업 시한 전까지 막판 추가 협상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최 위원장은 18일 세종시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기 전 취재진과 만나 “또 한번 사후 조정까지 왔다”며 “이번 추가 사후 조정도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사측 대표 교섭위원인 여명구 삼성전자 DS피플팀장 부사장과 김형로 부사장은 아무런 말 없이 바로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사실상 파업 전 마지막 협상인 만큼, 노사 양측이 극적으로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노사 양측은 성과급 투명화와 상한 폐지, 제도화 등을 둘러싸고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에 조정위원을 맡은 박수근 중노위원장은 19일까지 마라톤 협상을 이어가 반드시 사후 조정을 마무리 짓고, 파업을 막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 위원장은 “아직 양측 입장은 평행선이다”며 “파업에 이르지 않도록 조율해 나갈 것이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삼성전자 노사 양측이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노동권과 경영권 모두 동등한 권리라는 점을 짚으며, 서로 양보해 지혜로운 협상에 임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 대통령은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 질서를 채택한 대한민국에서는 기업만큼 노동도 존중돼야 하고, 노동권만큼 기업 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 세다고 더 많이 가지고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 연대하고 책임지며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다”고 덧붙였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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