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 논란, 사회적 갈등 비화하나…‘1000조 투자’ 삼성·SK만 죽을 맛

시간 입력 2026-03-16 07:00:00 시간 수정 2026-03-13 17: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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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 놓고 용인·새만금 신경전
“원안대로 추진해야” vs “지산지소 원칙 최우선 준수”
“용인에 약 1000조원 투입하는데”…삼성·SK 근심↑
K-반도체 “첨단 칩 역량 강화 위한 골든타임 놓칠라”

수도권에 짓기로 한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지 벌써 석달이 지났다. 그러나 지방 이전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와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 단체와 지역 주민까지 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을 둘러싼 공방전에 뛰어들면서, 단순한 해프닝에 그칠 것으로 보였던 해당 논란은 사회적 갈등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결국 K-반도체의 첨단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1000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반도체 클러스터에 쏟아 붓기로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근심만 한없이 깊어지고 있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은 12일 SNS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전력이 풍부한 곳으로 이전하는 데 동의한다’는 비율이 53.5%라는 한 여론 조사 결과는 객관성을 담보하는 여론 조사로 볼 수 없고, 비상식적인 조사다”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여론 조사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진행을 가로막으려는 세력이 입맛에 맞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술수를 부린 것이다”며 “정해 놓은 결론에 응답자가 따라가도록 유인하는, 기본과 기초에 어긋나는 조사다”고 지탄했다.

앞서 이달 9일 녹색전환연구소와 더가능연구소, 로컬에너지랩 등이 구성한 시민 단체 ‘기후정치바람’은 올해 6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전국 18세 이상 남녀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후 현안 여론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기후정치바람은 이번 조사에서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산단) 전력 공급용 송전탑 설치 갈등’을 먼저 언급한 뒤, 반도체 산단에 대량의 전력을 어떻게 공급할지 물었다. 이에 전체 응답자 중 53.5%는 ‘전력이 풍부한 곳으로 반도체 산단을 이전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와 달리 ‘다른 지역에서 전력을 끌어 와 산단을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를 고른 응답자는 21.1%에 그쳤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전력망인 ‘에너지 고속도로’와 관련해, 전체 응답자 65.7%는 ‘각 지역 에너지를 근거리에 공급하는 것(지산지소)을 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비수도권에서 생산된 에너지를 수도권에 공급하는 것을 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를 고른 응답자는 12.3%에 불과했다. ‘잘 모르겠다’고 답한 비중은 22.0%였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 들어서는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진=연합뉴스>

기후정치바람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경기 지역의 조사 결과에 크게 주목했다. 경기 지역 응답자 중 46.5%가 ‘전력이 풍부한 지역으로 산단을 이전해야 한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지역에서 전력을 끌어 와 산단을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를 고른 경기 지역 응답자는 28.4%, ‘잘 모르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25.1% 등으로 대조를 보였다.

이를 두고 이 시장은 기후정치바람이 반도체 산단 조성과 관련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답변이 나오도록 유도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최근 경기 용인 반도체 산단 전력 공급용 송전탑 설치를 둘러싸고, 강원, 호남, 충남, 경기 안성 등 다양한 곳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귀하께서는 이같은 내용을 들어보셨거나 알고 계십니까?’라는 조사 문항에 대해 “잘 진행돼 온 용인 반도체 산단 조성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오도하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고 꼬집었다.

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전력 공급 계획을 정부가 세웠고, 이 계획을 이행할 책임도 정부에 있다는 것은 쏙 빼놓고 질문했다고 했다. 반도체 생산에서 전력만 중요한 것처럼 오인하게 했고, ‘생태계’와 ‘집적 효과’에 대해선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 시장은 “반도체를 잘 모르는 응답자들로 하여금 시민 단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답을 하도록 설계한 ‘나쁜 조사’다”며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일부 동조자가 해당 여론 조사 결과를 근거로 반도체 생산라인 이전을 또다시 주장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안 의원은 지난 10일 SNS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난해 12월부터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이전·유치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며 “기후정치바람의 여론 조사가 그 방향을 다시 확인해 줬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를 먼 곳에서 끌어 오는 구조가 아닌, 전력이 있는 곳에서 산업을 키우는 것이 합리적인 국가 전략이다”며 “전북이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과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도민 여러분과 함께 길을 열겠다”고 강조했다.

3월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송전 선로 전면 재검토와 사회적 대화 기구 구성 촉구를 위한 전국행동 3.4 궐기대회’. <사진=연합뉴스>

이렇듯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 문제를 두고 해당 지역 지자체와 정치권, 시민 단체 간에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지역 주민까지 거리로 나서며 논란의 덩치는 더 커지는 모양새다.

‘용인 반도체 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전국행동’은 이달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용인 반도체 산단으로 향하는 송전 선로 건설 계획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었다.

주최측 추산 5000여 명이 참석한 궐기대회에서는 충남과 호남 지역 주민들의 삭발식이 거행됐다. 또 송전탑 모형을 무너뜨리는 퍼포먼스와 청와대 앞까지 상여 행진 등도 진행됐다.

이들은 △용인 반도체 산단 계획 전면 재검토 △지산지소 원칙 준수 △사회적 대화 기구 구성 등을 강력히 촉구했다.

주민들은 “수도권과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농촌 지역에 초고압 송전탑을 세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에너지 식민지’ 정책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용인 반도체 산단 이전 반대 시민추진위원회’는 지난 1월 31일 용인특례시청 야외 음악당에서 촛불 집회를 열고, 삭발식을 거행했다. 이들은 “국가 경쟁력과 안보를 지탱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방 이전설을 서둘러 종식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 논란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의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부는 침묵하고 있다.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월 8일 브리핑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대상 기업의 지방 이전을 검토하지 않은 상황이다”며 “이는 기업이 판단해야 할 몫이다”고 일축했다. 그리고 지금껏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3월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송전 선로 전면 재검토와 사회적 대화 기구 구성 촉구를 위한 전국행동 3.4 궐기대회’. <사진=연합뉴스>

그러는 사이 반도체 클러스터를 통해 첨단 칩 경쟁력을 제고하려 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간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미 지난해 2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착공에 돌입한 SK하이닉스는 더 난처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원삼면 일대 415만㎡(약 126만평) 규모의 부지에 구축되는 메가급 반도체 산단으로, SK의 첨단 AI 메모리 양산을 주도할 핵심 생산 거점이다. 약 600조원이 투입되는 이 곳에는 총 4기의 팹이 구축된다. 팹 1기가 SK하이닉스 청주캠퍼스 M15X 6기와 맞먹는 규모임을 감안하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기 팹 공사 첫 삽을 뜬지 1년여가 지난 현재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특수 약품 등을 공급해주는 CUB(센트럴유틸리티빌딩), 반도체가 생산되는 핵심 생산 시설인 팹, 수자원을 재사용하는 데 필요한 WWT(워터웨이스트트리트먼트), 임직원 사무동 등 주요 시설들이 어느 정도 윤곽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보다 한발 늦긴 했지만 삼성전자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12월 LH와 산단 조성을 위한 부지 매입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LH는 산단 예정지 내 토지 소유자들과 토지 및 지장물(건물, 공작물, 수목 등)에 대한 보상 협의에 착수했다.

삼성전자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남사읍 일대 728만㎡(약 220만평) 규모의 부지에 들어서는 초대형 시스템 반도체 국가 산단이다. 투자 규모는 약 360조원에 이른다.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 <사진=SK하이닉스>

이렇듯 1000조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순항하고 있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지방 이전설이 확산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근심만 깊어지고 있다.

만약 용인에 구축키로 한 반도체 클러스터의 새만금 이전이 현실화할 경우, K-반도체의 역량 강화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미 짓고 있거나 토지 보상에 착수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뒤엎고, 다시 새만금에 산단을 구축하는 것은 첨단 칩 경쟁력을 제고할 시간만 늦추는 꼴이라는 분석이다.

이렇다 보니 반도체 업계 안팎에선 세계 각국이 반도체 패권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정부가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시장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단계별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것임을 대통령이 직접 천명해 달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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