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퀀텀점프’ vs 삼성전자 ‘제자리걸음’…AI 메모리 HBM이 ‘희비’ 갈랐다

시간 입력 2025-05-06 07:00:00 시간 수정 2025-05-07 09:02:32
  • 페이스북
  • 트위치
  • 링크복사

지난해 SK하이닉스 매출, 2019년 27조원 대비 145.2% 오른 66.2조원
영업익은 무려 765.1%↑…HBM 등 차세대 메모리 기술 고도화 힘쓴 덕
‘HBM 대응 미흡’ 삼성전자, 5년 새 매출 30.6% 성장하는 데 그쳐
CEO스코어, 국내 500대 기업 2019년 및 2024년 실적 조사

글로벌 복합 위기에 따른 저성장 기조에도 최근 5년 간 SK하이닉스의 매출액이 10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AI(인공지능) 시대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사업에 적극 대응한 결과다. 반면 ‘메모리 최강자’ 타이틀을 내준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30%가량 성장하는 데 그쳐 대조를 보였다.

6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대표 조원만)가 국내 500대 기업 중 2019년과 2024년 결산보고서를 제출한 407개사(금융사 제외)를 대상으로 최근 5년 간 실적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SK하이닉스의 매출은 66조1930억원으로 2019년 26조9907억원 대비 145.2%(39조2023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은 더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SK하이닉스의 영업익은 2019년 2조7127억원에서 지난해 23조4673억원으로, 무려 765.1%(20조7546억원) 늘어났다.

지난 5년 새 SK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낸 것은 AI 반도체 구동에 필수인 HBM 경쟁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한 덕분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경쟁사들보다 한발 앞서 HBM 등 차세대 메모리 기술 고도화를 통해 내부 역량을 강화하는 데 힘써 왔다. 이에 전 세계 HBM 시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게 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SK하이닉스의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52.5%로, 과반을 넘긴 상태다.

HBM 호황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세계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SK의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은 36%로 집계됐다. 이에 34%를 기록한 삼성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도약했다.

SK하이닉스 HBM4 12단 샘플.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HBM4 12단 샘플.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뛰어 넘어 글로벌 D램 시장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글로벌 AI 리더십과 뚝심 있는 투자가 뒷받침된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12년 최 회장은 SK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반도체를 낙점하고, SK하이닉스(옛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했다.

반도체는 고(故) 최종현 회장이 선경반도체를 설립하며 진출했던 사업 분야다. 그러나 당시 제2차 오일 쇼크가 닥치며 SK는 반도체 사업을 접어야 했다.

전례를 교훈 삼아 최 회장은 2010년 전문가를 초청해 서울 모처에서 반도체 공부 모임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반도체 시장의 미래와 SK하이닉스 인수의 실익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SK하이닉스는 채권단 관리를 받으며 연간 2000억원대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최 회장은 주변의 반대에도 약 3조5000억원을 들여 SK하이닉스를 전격 인수했다.

인수된 지 13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최 회장의 뚝심은 적확하게 들어맞았다. SK하이닉스는 끊임없는 노력과 혁신을 통해 글로벌 톱 AI 메모리 기업으로 거듭났다. 특히 AI 열풍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HBM 시장에서 독보적인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HBM 역량이 업계 최고 수준으로 강화될 수 있었던 것은 최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2012년 SK그룹에 편입된 이후 SK하이닉스는 최 회장의 안정적인 투자에 힘입어 HBM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이같은 공격적인 투자 기조는 성공적인 경영 실적으로 이어졌다. SK그룹에 인수되기 전만 해도 만년 적자 기업으로 낙인 찍혔던 SK하이닉스는 그룹에 편입된 이후인 2012년 4분기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최근 5년 간 매출액이 150% 가까이 고속 성장하는 ‘퀀텀점프(비약적 실적 개선)’ 기업에 등극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1월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내 SK 공동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SK>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1월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내 SK 공동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SK>

SK와 함께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삼성은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매출은 300조8709억원으로 2019년 230조4009억원 대비 30.6%(70조4700억원) 확대됐다.

영업이익은 오름 폭이 더 적었다. 삼성전자의 영업익은 2019년 27조7685억원에서 지난해 32조7260억원으로, 17.9%(4조9575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모바일, TV, 생활가전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만큼 단순 수치상으로 SK하이닉스와 실적을 비교하긴 어렵다. 다만 SK가 5년 새 2배 넘게 매출이 늘어나는 동안 삼성은 3분의 1배 정도 증가하는 데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삼성전자의 매출 성장이 정체기에 접어든 것은 HBM 주도권 선점에 실패한 영향이 가장 크다.

실제로 지난달 19일 열린 삼성전자 정기 주주 총회(주총)에서 전영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부회장은 “AI 경쟁 시대에 HBM이 핵심 메모리인데, 시장 트렌드를 조금 늦게 읽는 바람에 초기 시장을 놓쳤다”고 삼성 HBM의 경쟁력 약화를 시인한 바 있다.

위기를 의식한 삼성은 조직 개편, 기술 개발 등 필수 토대를 마련했다며 HBM 역량을 서둘러 제고하겠다고 공언했다.

최근엔 AI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의 요구에 맞춰 성능을 더욱 높인 5세대 HBM ‘HBM3E’ 개선 제품을 양산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올 2분기 본격적으로 제품 공급을 확대하고, 늦어도 하반기부터는 HBM3E 12단 제품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여전히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2024년 3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4’에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삼성 HBM3E에 남긴 친필 사인. <사진=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2024년 3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4’에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삼성 HBM3E에 남긴 친필 사인. <사진=연합뉴스>

삼성이 주춤하는 사이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마이크론)는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선언하며 HBM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유일하게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하지 못한 삼성전자가 마이크론의 거센 추격을 받게 된 가운데 머지않아 역전을 허용하는 것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마저 제기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HBM 경쟁력 확보 여부에 삼성 반도체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1b(10나노급 5세대) DDR5, 1a(10나노급 4세대) HBM3E 제품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삼성 메모리 경쟁력 및 실적 개선 여부는 HBM3E 12단 개선 제품의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 통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고 전망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