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0 고정밀 지도 요구, 단순 지도 서비스 넘어선 포석
자율주행·디지털트윈 등 미래 기술 주도권 상실 위기감 고조
네이버·카카오 등 지도 앱 경쟁력 강화 나서…사용자 편의 개선

구글이 우리 정부에 1:5000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또 다시 요구하면서 국내 IT 업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산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지도 서비스 개선 차원을 넘어, 자율주행, 디지털 트윈 등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보고 있다.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구글이 정밀지도 등 핵심 데이터까지 확보하게 될 경우,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구글은 2007년, 2016년에 이어 지난 2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이 한창이던 시점에 또다시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을 상대로 1: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 데이터센터로 옮길 수 있게 해 달라고 신청했다.
구글의 이같은 요구에 국내 IT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도 데이터는 자율주행, AR(증강현실), 디지털 트윈, 스마트시티 등 차세대 기술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미래 산업의 ‘기름’과 같은 핵심 데이터를 선점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특히 1:5000 축척 지도는 건물 형태와 도로망 등 지형지물이 매우 상세하게 표현돼 도시계획, SOC 건설 등에 활용되는 수준의 정밀도를 갖는다. 이는 일반적인 길찾기 등 지도 서비스에 필요한 수준인 1:25000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구글이 고정밀 지도를 확보한다면,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많은 자본과 연구 인력을 투입해 지도 기반의 다양한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지만, 같은 조건이라면 글로벌 공룡인 구글에게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등 글로벌 빅테크들의 서비스가 막강한 플랫폼 경쟁력으로 국내 시장을 잠식한 전례가 재현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팽배하다.

구글은 2만5000 대 1 축적의 공개 지도 데이터에 항공사진, 위성사진 등을 결합해 한국 지도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구글 지도>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국내 기업들은 자체 지도 서비스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사용자 편의’ 논란을 불식시키고, 국내 기술력만으로도 충분히 고품질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하려는 노력이다.
네이버는 네이버 지도를 단순 길찾기를 넘어 쇼핑, 예약, 금융 등 다양한 서비스를 아우르는 ‘슈퍼 앱’으로 진화시키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리뷰 기능 강화, 쏘카 등 모빌리티 기업과의 제휴, 사용자 위치 기반 재난·사고 정보 알림 등 공적 기능까지 확대하며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카카오 역시 카카오맵에 전문가 검색, 실내 지도 기반 혼잡도 안내, 트렌드 랭킹 등 차별화된 기능을 지속적으로 추가하며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편,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문제는 여전히 민감한 안보 이슈를 안고 있다. 1:5000 지도에는 주요 국가기반시설 및 군사시설 등이 상세히 노출될 수 있어, 국외 반출 시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지도 데이터 반출 제한을 문제 삼으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어, 정부의 고민은 더 깊어진 상황이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구글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요구는 단순히 기술적 문제를 넘어 경제 주권, 데이터 주권과도 직결된 사안”이라며 “사용자 편의성 향상이나 통상 압력에 밀려 성급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과 국가 핵심 데이터 보호 체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동일 기자 / same91@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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