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시중은행 기술대출 1393조…1년새 10.8조↓
시중은행 연체율 중소기업대출 중심으로 상승, 부담 늘어
경기 침체에 중소기업 자금경색 이어져…유동성 공급 절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필수적인 자금줄 역할을 했던 시중은행들의 기술신용대출이 1년새 11조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담보 여력이 부족한 창업·중소기업이 기술력을 담보로 받는 대출인 만큼 리스크 부담이 큰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들의 자금경색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중은행들도 상생금융 차원에서라도 중소기업에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와 조기대선 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시중은행은 당분간 리스크 관리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8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139조293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월(150조1233억원)보다 7.21% 감소한 것으로, 1년 사이 10조8302억원 가량 줄어든 수준이다.
건수 역시 1년새 5만건 넘게 줄었다. 4대 은행의 기술신용대출 건수는 29만5136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34만8043건)보다 15.20% 감소했다.
기술금융이란 창업이나 R&D(연구·개발), 기술 사업화 등 기술 혁신 과정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으로, 기술신용대출은 신용이나 담보 여력이 부족한 창업·중소기업이 기술력을 담보로 받는 대출 상품이다. 은행권은 관련 제도가 도입된 2014년부터 해당 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4대 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1년새 일제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KB국민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29조3720억원으로, 전년 동기(34조8673억원)보다 15.76% 줄었다. 건수 역시 10만2872건에서 24.04% 줄어든 7만8143건을 기록하며 감소폭이 두드러졌다.
뒤이어 하나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이 8.89% 줄어든 34조5616억원을 기록했다. 하나은행의 기술신용대출 건수는 7만6601건으로, 1년새 14.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기술신용대출 잔액 역시 각각 5.26%, 0.35% 줄어든 32조6310억원, 42조7285억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주요 시중은행의 기술신용대출이 줄어든 데는 고금리 및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리스크 관리 기조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술신용대출의 경우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필수적인 자금줄 역할을 지원하지만, 은행의 리스크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0.50%)은 전년 동기(0.41%)보다 0.09%p(포인트) 상승했다. 이 가운데 대기업대출 연체율(0.03%)은 전년 동월(0.12%) 대비 0.09%포인트 하락한 반면, 중소기업대출 연체율(0.62%)은 0.14%포인트 상승했다.
아울러 당국 차원에서 관련 가이드라인을 손질한 점도 대출 잔액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2020년 하반기 당국은 ‘기술금융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지난해 7월부터는 심사에 활용되는 ‘기술신용평가(TCB)’의 발급 기준도 강화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기술금융 대상 정비 △품질심사 기준 강화 △테크평가제도 개선 △평가물량 배정 기준 개선 등이 담겼다.
그간 시중은행들은 실적에만 집중해 병·의원, 소매업 등 혁신 기술이 없는 비(非)기술기업에도 대출을 쉽게 내어 준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TCB 발급 기준 강화에 따라 은행이 일반 병·의원 및 소매업 등과 같은 비기술기업에 대한 기술금융을 시행하지 못하게 되는 등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이 중요해지며 대출 규모 자체가 줄었다는 설명이다.
이미 고금리 장기화에 따라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전 정부의 R&D(연구개발) 예산 삭감으로 인해 중소기업은 돈줄마저 마른 상황이다. 여기에 기준이 엄격해지며 대출을 받지 못하게 되는 중소기업들도 늘어나는 등 삼중고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중소기업 생산지수는 98.1로, 통계가 집계된 201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아울러 중소기업중앙회의 ‘2024년 중소기업 금융이용 및 애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7.2%가 지난해 자금 사정이 악화했다고 답했다. 호전됐다는 기업은 6.6%에 불과했다.
은행을 통한 자금조달 시 애로사항으로는 ‘높은 대출금리(46.9%)’를 가장 많이 꼽았으며, 중소기업에 가장 절실한 금융지원 과제로는 ‘금리부담 완화 정책 확대(38.6%)’가 가장 높게 집계됐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 해소가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또 벤처기업협회가 발표한 1분기 벤처기업 경기전망지수(BSI)는 88.9로 전 분기(110.7) 대비 21.8p 감소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조사 이래 처음으로 기준치(100)를 밑도는 수치로, 내년도 1분기 벤처업계 경기가 매우 위축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여기에 경제성장률 전망치마저 낮아지며 중소기업의 경영 상황은 점차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25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로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전망보다 0.4%포인트 낮춰 잡은 것이다.
이처럼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중소기업들의 자금경색이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시중은행들도 상생금융 차원에서라도 중소기업에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조치, 대한민국의 조기 대선 등 국내외적인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은행권의 리스크 관리 강화 기조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도 중소기업 지원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월 17일 국회에서 중소기업특별위원회(중기특위) 출범식을 열고,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 관계자들로부터 정책 제안을 청취했다. 중기특위는 중소기업의 현장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실질적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출범했다.
이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면 축사를 통해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뿌리이자 고용의 중심”이라며 “70년 만에 최저 성장률을 기록한 경제 위기 속에서 장기화된 고환율·고금리·고물가의 고통에 내수 경기 침체, 세계 무역의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도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중소벤처기업과 대·중소기업이 혁신과 상생을 통한 미래 먹거리 준비를 위해 모두가 전력을 다해야 할 때”라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중소기업 운영에 좋은 환경, 기술 혁신과 연구 개발을 위한 뒷받침은 물론, 공정한 시장 환경 조성에 국회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CEO스코어데일리 / 이지원 기자 / easy910@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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