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반도체 지원금’ 공수표 되나…삼성·SK, 수십조 투자약속 하고 ‘노심초사’

시간 입력 2025-03-06 16:32:41 시간 수정 2025-03-06 16: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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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450억달러·SK 38억7000만달러 대규모 대미 투자
보조금 확정지었지만 아직 미지급…트럼프 2기 때 집행
트럼프, CSA 폐기 카드 ‘만지작’…보조금 공수표 위기
“25% 관세 폭탄 피해야 하는데”…K-반도체 진퇴양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지원법(CSA)’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에 투자한 주요 반도체 업체에 지불키로 한 보조금이 자칫 공수표가 될 전망이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키로 한 K-반도체로서는 근심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미 연방의회 합동 세션 연설에서 “CSA 및 이와 관련된 것들을 모두 없애야 한다”며 “그 돈으로 부채를 줄이거나 다른 원하는 곳에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CSA 폐지를 천명하고 나서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대 수조원에 이르는 CSA에 따른 보조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게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현재 K-반도체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파격적인 지원 정책에 힘입어 미 현지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 생산라인을 구축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 텍사스에 17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30년까지 누적으로 약 450억달러를 투자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을 신축키로 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4월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약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HBM 등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 AI용 AVP(어드밴스드패키징)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SK하이닉스가 최초다. SK는 인허가 등 공장 설립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반도체의 공격적인 대미 투자에 당시 바이든 행정부도 화답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12월 CSA에 근거해 삼성전자에 47억4500만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키로 했다. SK하이닉스도 4억5800만달러의 보조금과 5억달러의 대출 지원을 확정 받았다.

그러나 K-반도체에 대해 결정된 보조금은 실제 트럼프 2기 행정부 임기 중에 집행될 예정이다. 삼성·SK에 대한 지원금이 아직 지급되지 않은 것이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인스타그램 캡처>

이런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CSA를 폐기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당장 삼성·SK의 미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 구축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바이든 행정부 때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미 현지에 반도체공장을 짓고 있지만, 정권이 교체되면서 정작 보조금을 못 받을 상황에 처한 것이다.

문제는 CSA에 따른 보조금 지급 여부를 막론하고 K-반도체가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설비 건설을 한시도 늦출 수 없다는 점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반도체에 최소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미국으로 첨단 칩을 수출하는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관세 부담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반도체에 고율 관세가 적용될 경우 미국으로 수출되는 칩 가격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했다. 반도체 관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미 반도체공장 구축을 서둘러야 하지만, CSA에 따른 보조금을 제대로 지급 받지 못해 당초 생산라인 확장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수십조원을 쏟아 부어 미국 내 반도체 생산 거점을 만들고 있는 삼성·SK가 트럼프 행정부의 배만 불리고, 실익은 거의 얻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하고 있다.

CSA 폐기, 트럼프발 관세 폭탄 등 겹악재가 닥치자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 대만 TSMC가 가장 먼저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 맞추기에 적극 나섰다. CSA에 따른 보조금 지급 지연, 반도체 등 주력 수출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 등 독소 정책을 앞세워 미 현지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발맞춰, 미국에 무려 1000억달러(약 146조1700억원)를 투자키로 하면서다.

앞서 웨이저자 TSMC 회장은 현지시간으로 3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한 뒤, 미국에 1000억달러 투자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TSMC는 향후 짧은 기간에 최첨단 반도체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최소 1000억달러를 새로 투자할 것이다”며 “신규 투자는 미 애리조나주에 5개의 반도체공장을 건설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발표로 TSMC의 대(對)미국 투자는 모두 1650억달러(약 241조1640억원)로 늘어난다”며 “이것은 미국 및 TSMC에 엄청난 일이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3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웨이저자 TSMC 회장(왼쪽)과 면담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TSMC는 2020년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투자 규모를 650억달러로, 5배 넘게 확대했다.

대규모 투자에 힘입어 최근 TSMC는 미 애리조나주 1공장(P1)에서 4나노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2공장(P2)은 올해 상량식 등을 완료하고, 2027년 3분기부터 3나노 칩을 제조할 계획이다. 올해 기공식에 들어가는 3공장(P3)은 2027년 말까지 반도체 생산 설비를 설치하는 등 첨단 반도체 양산 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키로 했다.

이런 와중에 기존의 투자 규모를 뛰어 넘는 1000억달러를 추가로 투입키로 하면서 TSMC의 대미 투자 규모는 무려 1650억달러까지 불어나게 됐다.

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TSMC가 미국 내 투자를 크게 늘려 관세 부과 조치와 보조금 지급 지연 등을 동시에 타개하고 나섰다는 분석을 내놨다.

TSMC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주요 반도체 업체 중 처음으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으면서 K-반도체 진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미 현지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키로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트럼프발 관세 폭탄과 보조금 지급 지연 등 겹악재를 극복하기 위해선 TSMC처럼 대미 추가 투자 계획을 내놔야 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일단 K-반도체는 북미 대관 담당 등을 총동원해 현지 동향을 면밀히 살펴보며 기업에 미칠 영향 등을 따져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이후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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