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비위 맞추기' 나선 TSMC, 25조 대미 투자 결정…‘관세 폭탄 위기’ 삼성은 어쩌나

시간 입력 2025-02-15 07:00:00 시간 수정 2025-02-14 08:4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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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이사회서 171.4억달러 자본 지출 승인
반도체 관세 부과·美 생산 능력 확대 압박 대응
애리조나공장 1.6nm 첨단 공정 도입 등 속도
삼성, 대미 추가 투자 등 전략 수정 불가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 대만 TSMC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비위 맞추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반도체 등 주력 수출 품목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미 현지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구상에 맞춰 대(對)미국 투자를 대폭 늘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TSMC가 첨단 공정 및 팹 증설 등에 투자를 집중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TSMC를 따라잡겠다고 공언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전략에도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K-반도체 역시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에 직면한 상황에서, 삼성 파운드리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TSMC 못지않은 대미 투자 계획 등 실리 추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TSMC는 미국 애리조나공장에서 이사회를 열고, 171억4140만달러(약 24조8190억원) 규모의 자본 지출을 승인했다.

이렇게 마련된 재원은 향후 미 현지에 첨단 패키징 설비 업그레이드, 팹 건설 및 팹 시스템 설치 등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TSMC 이사회가 25조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투자에 동의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첨단 칩에 대한 관세 부과 등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TSMC에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이후 “대만은 우리(미국)를 떠나 대만으로 갔는데, 대만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약 98%를 차지하는 곳이다”며 “그들이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에겐 돈이 필요하지 않고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며 “그 인센티브는 그들이 25%, 50%, 심지어 100%의 관세를 내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고 덧붙였다.

반도체에 대한 고강도 관세 부과 조짐에 위기감을 느낀 TSMC는 대미 추가 투자라는 회유책을 꺼내 들며 눈앞에 닥친 트럼프 리스크를 피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연합보, 중국시보 등 복수의 대만 언론은 “TSMC가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 정책에 협조해 미 투자를 늘릴 것이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건설 중인 TSMC 파운드리공장. <사진=TSMC>

실제로 TSMC 이사회는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21 팹에 1.6nm(1nm는 10억분의 1m) 선단 공정 신규 건설안과 관련한 투자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TSMC는 애리조나주 1공장(P1)에서 4나노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 2공장(P2)은 올해 상량식 등을 완료하고, 2027년 3분기부터 3나노 칩을 제조할 계획이다. 올해 기공식에 들어가는 3공장(P3)은 2027년 말까지 반도체 생산 설비를 설치하는 등 첨단 반도체 양산 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TSMC는 애리조나공장의 첨단 공정 도입 시기를 앞당기고, 신규 공장 투자를 약속하는 방식으로 트럼프 비위 맞추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첨단 반도체 패키징 생산 시설이 추가로 설립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애리조나공장에서 생산된 웨이퍼는 후공정을 위해 대만으로 보내졌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같은 과정을 단축함과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에도 부응하기 위해 TSMC는 신규 패키징 생산 설비 투자 계획을 조만간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다.

TSMC가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며 대미 투자를 늘리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 파운드리 2위 삼성전자의 행보에도 이목이 쏠린다. TSMC와 마찬가지로 삼성도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으로 인해 K-반도체가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무협)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반도체 수출액은 106억8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 33억7000만달러 대비 3배 넘게 급증한 수치다.

K-반도체의 대미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은 미 정부의 대중 관세에 따른 반사이익 덕분이다. 앞서 지난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산 반도체에 25% 관세를 적용했다. 지난해 5월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산 반도체 관세율을 50%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중국 전자 제품의 보안 문제도 한국산 반도체의 수출 확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실제 미국 내 주요 대학,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서버 구축에 탑재되는 메모리 반도체를 중국산에서 한국산으로 대거 교체한 바 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AI(인공지능)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열풍도 한몫했다. 챗GPT 등 생성형 AI가 날로 고도화되면서 이를 구현하기 위한 첨단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같은 흐름에 수혜주로 부상한 제품이 바로 HBM이다.

HBM의 인기는 삼성·SK에 큰 호재로 작용했다. K-반도체는 글로벌 HBM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3년 SK하이닉스의 전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53%로, 이미 절반을 넘겼다. 삼성전자도 38%의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SK하이닉스의 뒤를 바짝 추격 중이다. 삼성·SK의 점유율 합산은 91%로, 사실상 K-반도체가 전 세계 HBM 공급을 전담하고 있다.

한국산 반도체의 인기가 고공행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면 K-반도체의 경쟁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트럼프 보편 관세의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이 지금보다 4.7~8.3% 줄어들 것이라고 관측하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발 반도체 관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전자 역시 미 현지에 서둘러 반도체 생산 거점을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삼성은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파격적인 지원 정책에 힘입어 미 현지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 텍사스에 17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리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2030년까지 누적으로 약 450억달러를 투자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을 신축키로 했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결정된 사안이다. 결국 삼성전자가 트럼프 리스크를 타개하기 위해선 새로운 협상 카드가 필요한 상황이다. TSMC가 최근 25조원가량 대미 투자를 결정한 것도 이같은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인스타그램 캡처>

상황이 이렇다보니 삼성이 첨단 반도체 기술을 ‘생존 기술’로 활용하는 등 실리 추구 전략을 앞세워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미 대선 결과에 따라 한국이 마주하게 될 위기와 기회를 조망한 보고서에서 “K-반도체는 CSA에 의해 올해 들어설 국립반도체기술센터(NSTC)에 적극 참여해 미국 주도의 기술 개발 협력 체계에 편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원선 STEPI 부연구위원은 “돌아온 트럼프 당선인은 철저한 거래의 달인으로,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주안점을 둘 것이다”며 “미·중 경쟁의 심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실리 추구에 기반을 둔 생존 기술 확보 전략이 최우선이다”고 진단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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