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전망치 10조7717억원 크게 못 미쳐…반도체 부진 탓
범용 D램 판매 둔화…일회성 비용·비우호적 환율 영향도
SK하이닉스에 HBM 패권 내줘…영업익 역전 가능성↑
전영현, 이례적 ‘사과 메시지’…“‘도전정신’ 으로 재무장”
지난 2분기 10조원을 웃도는 영업 흑자를 기록하며 ‘메모리 최강자’의 귀환을 알렸던 삼성전자가 올 3분기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9조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스마트폰과 PC 등 IT 수요가 예상보다 더디게 회복되는 탓에 주력 제품인 범용 D램의 판매가 부진했고, 반도체 사업 부문에 일회성 비용 등이 반영되면서 실적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예기치 못한 삼성의 반도체 위기로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실적 전망이 시간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가 세부적인 실적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DS 부문 영업익이 5조원대에 머물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는 7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관측되는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익 보다 크게 낮은 수치다. 당장 K-반도체 선두 자리를 SK에 내줄 위기에 처한 삼성전자는 때이른 “반도체 겨울 한파’에 몸을 낮추고 있다.
삼성전자는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올 3분기 영업이익이 9조1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8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2조4335억원 대비 274% 증가한 수치다.
1년 전과 비교해선 영업익이 크게 늘었으나 직전 분기보다는 오히려 감소했다. 올 2분기 삼성전자 영업익은 10조4439억원으로, 2022년 3분기(10조8520억원) 이후 7개 분기 만에 분기 영업익 10조원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1개 분기 만에 10조원선 밑으로 다시 추락했다.
특히 시장의 눈높이에 모자라는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시장 전반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증권사 컨센서스에 따르면, 당초 삼성전자의 올 3분기 영업익 전망치는 10조7717억원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이날 잠정 영업익은 업계의 이같은 예상치를 크게 하회했다.
삼성전자의 분기 실적이 이처럼 극도로 부진한 것은 주력인 반도체 사업에서 수익성을 제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날 설명 자료를 내고 “메모리 사업은 서버와 HBM(고대역폭메모리)의 견조한 수요에도 불구하고 일부 모바일 고객사의 재고 조정 및 중국 메모리 업체의 범용 D램 제품 공급 증가로 인해 타격을 받았다”며 “일회성 비용과 환 영향 등이 맞물리면서 실적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HBM3E’의 경우 예상보다 주요 고객사에 대한 사업화가 지연됐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스마트폰과 PC 판매 부진으로 메모리 업체들의 재고 수준은 12~16주로 증가한 상태다. 이에 메모리 출하량 확대와 가격 상승이 예상보다 더 지체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의 지난달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직전월 보다 17.07% 내리며 지난해 4월(-19.89%) 이후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또한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 부문의 일회성 비용(성과급)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수주 부진, 비우호적인 환율, 재고 평가 손실 환입 규모 등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와 함께, HBM 사업부진도 큰 악재로 작용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AI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건 상태다. HBM 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삼성은 지난 4월 24Gb D램 칩을 TSV(실리콘관통전극) 기술로 12단까지 적층해 업계 최대 용량인 36GB HBM3E 12H를 최초 개발하며 HBM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5개월 가량 지난 현재까지도 삼성전자는 HBM3E 12단 제품에 대한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여전히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전자측은 “고객사 관련 사안은 확인해줄 수 없다”며 “주요 고객사와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고 유보적인 입장만 내놨다.
반면,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서 자리매김했다.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5세대 HBM인 ‘HBM3E’ 8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시작한 SK는 지난달 말 현존 HBM 최대 용량인 36GB를 구현한 HBM3E 12단 제품 양산에 본격 돌입하며 HBM 1등 굳히기’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는 연내 엔비디아에 HBM3E 12단 제품을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HBM3E 12단 제품을 먼저 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에 밀려 제품 양산에 돌입하지 못하고, 아직 품질 검증도 마무리 짓지 못하면서 자존심을 상당히 구기게 됐다.
사안이 심각하다보니 삼성 반도체 수장인 전영현 삼성전자 DS 부문장 부회장이 이례적으로 사과 메시지를 내는 초유의 사태도 발발했다.
전 부회장은 이날 잠정 실적 발표 후 ‘고객과 투자자, 그리고 임직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사과 메시지를 발표하고,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며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 경영진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분들께서 삼성의 위기를 말한다”며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 올린다”고 전했다.
또한 전 부회장은 “저희가 치열하게 도전한다면 지금의 위기는 반드시 새로운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삼성 경영진이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전 부회장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당장 올 3분기에 삼성 반도체가 SK하이닉스에 역전 당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사업 부문별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증권 업계에서는 올 3분기 DS 부문의 영업익 전망치가 5조3000억원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분석이 현실화한다면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에 K-반도체 선두 자리를 내줄 공산이 크다. 증권사 컨센서스에 따르면 올 3분기 SK하이닉스 영업익 전망치는 6조7559억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SK가 삼성보다 1조4000억원 더 많은 수치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흐름이 올 4분기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그간 굳건히 지켜 온 ‘메모리 1등’ 자리를 ‘만년 2등’으로 여겨지던 SK하이닉스에 내줄 위기에 처했다.
삼성전자는 향후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확실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전 부회장은 앞으로 DS 부문의 대대적인 쇄신과 혁신을 예고했다.
전 부회장은 “무엇보다 삼성 반도체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다”며 “기술과 품질은 우리의 생명이자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수성(守城)’의 마인드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 정신으로 재무장 하겠다”고 못 박았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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