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해외 법인 직원 해고 중…최대 30% 감원 전망도
SK에 ‘HBM 1등’ 내주고, TSMC와 파운드리 격차 못 좁혀
AI(인공지능) 메모리 선두 자리를 내 준 삼성전자를 둘러싼 위기론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HBM(고대역폭메모리) 기술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대만 TSMC와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격차는 더 벌어지면서 삼성 반도체 사업 전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 해외 인력을 감축한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글로벌 인력 감축 계획의 일환으로 동남아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해당 지역 인력의 약 10%를 해고할 예정이다.
블룸버그는 해당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싱가포르에 있는 삼성전자 여러 부서 직원이 인사 담당자, 관리자들과 비공개 회의에서 감원 계획과 관련한 세부 내용을 통보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다른 지역에 있는 해외 법인에서도 감원이 계획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측은 “일부 해외 법인에서 운영 효율성을 개선하고자 일상적인 인력 조정을 실시하고 있다”며 “회사 차원에서 특정 직책에 대해 구체적인 목표치를 설정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이미 직원들이 해고된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가 인도와 남미 일부 지역에서 약 10%의 인력 감원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삼성이 인원을 감축한다는 소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로이터 통신은 삼성전자가 전 세계 자회사에 영업 및 마케팅 직원을 약 15%, 행정 직원을 최대 30% 줄이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 계획은 올해 말까지 시행될 예정”이라며 “미주, 유럽, 아시아 및 아프리카 전역의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로이터는 해당 문제에 정통한 다른 6명의 소식통도 삼성전자의 글로벌 인력 감축 계획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직원이 해고될지, 어떤 국가의 사업부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최신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직원은 26만7800명으로, 이 중 절반 이상인 14만7000명이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다. 제조 및 개발 부문 직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영업 및 마케팅 직원은 약 2만5100명, 행정 직원 등은 2만7800명에 달한다.
로이터는 이번 인력 구조조정과 관련해 “삼성전자가 주요 사업부에 대한 압박이 가중됨에 따라 인원 감축을 추진 중이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삼성이 비용 절감을 통해 수익을 강화하려고 한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측은 “일부 해외 사업장에서 실시한 인력 조정은 일상적인 것으로 효율성 향상을 목표로 한다”며 “이를 통한 구체적인 목표는 없고, 생산 직원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삼성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업계 안팎에선 삼성전자 위기론에 무게를 싣고 있다. 글로벌 인력 감축에 돌입한 것 자체가 삼성이 큰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핵심 사업인 반도체에서 업황 부진으로 된서리를 맞으며 극심한 영업 적자를 맛 봤다. 지난해 모든 분기 적자를 기록한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연간 적자는 14조8800억원에 달했다.
올해 들어서는 반도체 부문이 극심한 부진의 늪에서 탈출하고 있지만,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던 예년 수준에 비해선 여전히 못 미치는 실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AI 열풍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HBM 주도권을 경쟁사에 내준 것이 가장 뼈아팠다.
현재 세계 HBM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곳은 HBM 역량 제고에 힘써 온 SK하이닉스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SK하이닉스의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53%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38%로, 양사 간 점유율 격차는 15%p로 벌어졌다.
AI 시대, 선도적 지위를 확보한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올 3월 세계 최초로 5세대 HBM인 ‘HBM3E’ 8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시작했고, 지난달 말엔 현존 HBM 최대 용량인 36GB를 구현한 HBM3E 12단 제품 양산에 본격 돌입하며 ‘HBM 1등 굳히기’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는 연내 엔비디아에 HBM3E 12단 제품을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 SK의 HBM 신제품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반도체 ‘블랙웰’에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삼성은 SK하이닉스보다 HBM3E 12단 제품을 먼저 구현했는데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24Gb D램 칩을 TSV(실리콘관통전극) 기술로 12단까지 적층해 업계 최대 용량인 36GB HBM3E 12H를 최초 개발했다. TSV는 수천개의 미세 구멍을 뚫은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적층된 칩 사이를 전극으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삼성은 이 기술을 기반으로 3GB 용량인 24Gb D램 12개를 수직으로 쌓아 현존 최대 용량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5개월 가량이 지난 현재까지도 삼성전자는 HBM3E 12단 제품에 대한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여전히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측은 “고객사 관련 사안은 확인해줄 수 없다”며 “주요 고객사와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고 유보적인 입장만 내놨다.
그간 HBM3E 12단 제품은 엔비디아에 공급된 사례가 없었다. 삼성전자가 HBM3E 12단 제품을 조속히 양산해 엔비디아에 가장 먼저 납품할 경우, HBM 패권 다툼에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이 아직까지 HBM3E 12H 품질을 검증해내지 못하면서, 자존심을 구기게 됐다.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온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삼성의 입지가 점점 더 좁혀지는 분위기다. 현재 삼성전자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2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세계 1위 TSMC와의 간극을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올 2분기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62.3%인데 반해, 삼성전자는 11.5%로 격차가 매우 벌어져 있다.
업계에선 파운드리사업부가 올해도 수조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일부 설비의 가동을 중단하는 등 가동률 조정에 나섰다.
이와 함께, 글로벌 투자은행, 자문사들을 통해 제기되고 있는 ‘반도체 겨울론’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 은행 맥쿼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삼성 메모리 사업이 다운사이클(하향 국면)에 진입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D램 등 메모리 공급 과잉에 따라 ASP(평균판매단가)가 내림세로 전환하면서 수요 위축이 실적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삼성전자의 주가도 크게 요동치고 있다. 증권 시황에 따르면 이날 장이 열리자마자 떨어지기 시작한 삼성전자 주가는 장중 한때 6만원선이 붕괴됐다. 다만 서서히 회복돼 이날 종가 기준 6만1300원에 장을 마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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