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정국 ‘요동’…K-반도체·배터리, 보조금 정책 ‘안개속’

시간 입력 2024-07-22 17:50:00 시간 수정 2024-07-22 17: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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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사퇴·재선 도전 포기
반도체 지원법·IRA 등 추진 동력 잃을 판
주식 시장 즉각 영향…K-반도체·K-배터리 동시 하락
트럼프, 보조금·세제 혜택 축소 발언에 ‘초비상’

미·중 반도체 갈등. <그래픽=권솔 기자>

메모리 활황으로 빠르게 부활하고 있는 K-반도체와 미래 먹거리로 낙점된 K-배터리 진영이 미국 대선 정국이 크게 요동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사퇴키로 하면서, 그가 추진해 온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이 자칫 추진 동력을 잃고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미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반도체 지원법과 IRA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만큼,  반도체 보조금, 배터리 세제 혜택 등이 축소되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마저 고조되는 모습이다. 당장, K-반도체, K-배터리 대표 기업의 셈법은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22일 증권 시황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기준 종가 8만4400원 대비 1.66%(1400원) 내린 8만3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장중 한때 8만2600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전 거래일 20만9500원 대비 무려 2.15%(4500원)나 떨어진 20만5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특히 장중 한때 20만500원에 거래되기도 하는 등 이른바 ‘20만닉스’가 붕괴될 수 있는 상황과 마주하기도 했다.

K-반도체 뿐만이 아니다. K-배터리도 하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K-배터리 대장주인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은 전 거래일 34만5500원 대비 4.92%(1만7000원)나 하락한 32만8500원에 장을 마감했고, 삼성SDI는 전 거래일 35만7500원 대비 4.20%(1만5000원) 내린 34만2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K-반도체와 LG엔솔, 삼성SDI 등 K-배터리 대표 기업들이 이날 주식 시장에서 좀처럼 기운을 내지 못한 것은 미국에서 날아든 소식 때문이다.

현지시간으로 21일 바이든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성명을 올리고, “재선에 도전하는 것이 내 의도였으나 (후보에서) 물러나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당과 국가에 최선의 이익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올해 11월 예정된 미 대선을 3개월여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전격 사퇴하고, 재선 도전을 공식 포기한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 소식에 당장 K-반도체와 K-배터리는 대(對)미국 투자와 현지 사업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반도체 지원법과 IRA 등 과감한 재정 지출을 통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전개해 왔다. 그러 바이든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재선을 포기하면서 다가오는 미 대선을 기점으로 해당 법안이 유명무실한 정책으로 전락하게 될지 모르는 위기에 처했다.

특히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가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만 TSMC 등에 지급하는 반도체 보조금, IRA 첨단 제조 생산 세액 공제(AMPC) 등을 문제 삼으면서 시장의 우려를 키우는 모습이다. 지난 1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대만이 우리 반도체 사업을 전부 가져갔다”며 “대만은 엄청나게 부유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대만이 미국에 새 반도체공장을 짓도록 (미국은) 수십억달러를 주고 있다”며 “그들은 (미국에 지은 반도체공장을) 이후 다시 자국으로 가져갈 것이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AI(인공지능) 특수를 타고 회복 국면으로 접어든 반도체 업계 전반에 찬물을 끼얹었다. TSMC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등 K-반도체도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혜택을 누려왔다.

올 4월 미국 정부는 미 텍사스주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공장을 건립하는 삼성전자에 보조금 64억달러(약 8조8781억원)를 지급키로 결정했다. 앞서 2021년 삼성은 미 텍사스주에 170억달러(약 23조5824억원) 규모의 파운드리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2030년까지 누적으로 약 450억달러(약 62조4240억원)를 투자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을 신축키로 했다.

만약 트럼트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반도체 보조금이 축소되거나 아예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미 현지에 첨단 반도체공장을 짓고 있는 기업들에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인스타그램 캡처>

SK하이닉스도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한다. 올 4월 SK는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AI 메모리용 AVP(어드밴스드패키징) 생산 기지를 건설한다고 밝혔다. 미 현지에 AI용 AVP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SK하이닉스가 최초다.

38억7000만달러(약 5조3685억원)가 투입되는 인디애나공장은 2028년 하반기부터 차세대 HBM 등 AI 메모리 제품을 양산할 예정이다.

이 계획에 맞춰 SK하이닉스 역시 올 4월 미 정부에 반도체 보조금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한다면 아예 지원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에 업계 안팎에서는 미 반도체 지원법이 폐기될 경우 현지 투자를 조정할 수 있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은 이달 19일 제주에서 열린 대한상의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시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 “SK의 대미 투자는 규모가 크지 않은 첨단 패키징공장 건립이고, 아직 완전히 결정된 것도 아니다”면서 “만약 미국이 지원금을 안 준다면 (그 때) 다시 (투자를)생각해봐야 할 문제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IRA 전체나 일부를 폐기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IRA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낮추지 않고 되레 높였다”고 지적하며, IRA AMPC 백지화 등을 시사했다. 사실상 K-배터리에 대한 세제 혜택이 축소될 수 있는 상황이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K-배터리는 IRA에 따른 세제 혜택을 온전히 누려 왔다. 실제로 LG엔솔의 올 2분기 IRA AMPC는 무려 4478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LG엔솔이 획득한 연간 IRA AMPC 6768억원의 3분의 2와 맞먹는 수치다.

올해 처음 IRA AMPC를 받게 된 삼성SDI는 올 1분기 467억원 규모의 세제 혜택을 받았다. 지난해 SK온의 연간 IRA AMPC은 무려 617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 오창공장. <사진=LG에너지솔루션>

K-배터리 3사가 상당 수준의 IRA AMPC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수년에 걸쳐 미국 내 생산 거점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선 덕분이다.

 LG엔솔이 현재 건설을 완료하거나 건립을 추진 중인 미 단독 공장 및 합작 공장의 생산 능력은 총 326GWh에 달한다. 삼성SDI의 배터리공장 생산 능력도 머지않아 100GWh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SK온도 127GWh를 웃돌 전망이다.

이런 와중에 바이든 대통령 사퇴,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가능성 등이 맞물리면서 최악의 경우 IRA가 예정대로 시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확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대선 정국 이슈로 반도체 보조금·배터리 세제 혜택 축소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삼성·SK·LG 등이 추진 중인 K-반도체·K-배터리 사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해 협상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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