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그룹 지배구조 진단] ③현대차그룹 숙원 과제 ‘지배구조 개편’…핵심은 ‘지분 확보→순환출자 해소’

시간 입력 2023-02-16 07:00:01 시간 수정 2023-02-16 09: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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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그룹 중 유일 순환출자 구조 유지
정의선 지분율 낮아…지배력 약화 전망
지배회사 체제 전환 재시도 가능성 제기

‘갈 길이 멀기만 하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이야기다. 정의선 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동일인 지정을 받아 그룹 총수 지위를 공식 인정 받은 지 오는 4월로 만 2년.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30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한 채 남아 있다.

시도는 했지만, 실패했다. 

순환출자 구조는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많은 회사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그 연결고리를 타고 한 회사의 부실이 전체 그룹으로 확산되는 문제도 있다. 순환출자 구조 해소에 시간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는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위해서라도 강력히 요구하는 입장이다. 

현대차그룹 역시 하고는 싶다. 정부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순환출자 그룹의 경우 글로벌 헤지펀드의 공격이 잦은 탓이다. 실제로 2018년 당시 엘리엇의 공격도 있었다. 당시 엘리엇의 공격으로 현대차그룹이 시행하려던 현대모비스와 글로비스의 합병이 무산됐다. 

하지만 문제는 자금이다. 실타래처럼 얽힌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과연 현대차그룹은 이 고차 방정식을 어떻게 풀 것인가. 정 회장이 많은 지분을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 상승에 집중하고 있어 2018년 실패한 지배회사 체제 전환이 다시 시도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이 어떤 답을 내놓을 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순환출자 고리 4개로 감소…‘현대모비스→현대차’ 핵심

16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대표 김경준)가 2022년 대기업 집단 상위 30곳 중 총수가 있는 25개 그룹을 대상으로 최근 10년간 지배구조 변화를 조사한 결과,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2015년 4월 기준 6개에서 2016년 4월 기준 4개로 줄어들었다. 현대제철이 2015년 7월 현대하이스코를 흡수 합병하면서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하이스코→현대제철→현대모비스’, ‘현대모비스→현대차→현대하이스코→현대제철→현대모비스’ 등 2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한 영향이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2016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순환출자 고리를 추가로 해소하지 못했다. 현대차그룹을 제외한 국내 30대 그룹 대부분이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순환출자 구조에서 벗어난 것과 대조된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삼성, 롯데, 현대중공업, 한진, DL, 중흥건설, 현대백화점, 금호아시아나, HDC, 영풍 등 10개 그룹이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들 그룹은 지난해 말까지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해소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글로비스(0.69%)→현대모비스(16.53%)→현대차(4.88%)→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5.82%)→현대모비스(16.53%)→현대차(6.87%)→현대제철’, ‘현대제철(5.82%)→현대모비스(16.53%)→현대차(33.88%)→기아(17.27%)→현대제철’, ‘현대모비스(16.53%)→현대차(33.88%)→기아(17.37%)→현대모비스’ 등 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 중 핵심 순환출자 고리는 현대모비스에서 현대차로 이어지는 구조다.

순환출자는 ‘A사→B사→C사→A사’ 식으로 계열사끼리 서로 꼬리를 물며 지분을 보유하는 구조를 뜻한다. 대주주가 적은 지분으로도 여러 회사를 지배할 수 있는 반면 한 회사가 도산하면 줄도산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을 개정한 2014년 7월 당시 이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규제를 가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의선 계열사 지분 낮아…그룹 지배력 약화 불가피

문제는 현대차그룹의 주요 계열사에 대한 정 회장의 지분율이 낮다는 점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말 기준 현대차 지분 2.62%, 기아 지분 1.74%를 보유했다. 특히 현대차를 지배하는 현대모비스에 대한 정 회장의 지분율은 0.32%에 불과했다. 정 회장의 지분율이 가장 높은 계열사는 현대글로비스로 20%를 기록했다. 정 회장이 지난해 1월 칼라일그룹의 특수목적법인(SPC) ‘프로젝트 가디언 홀딩스 리미티드’에 보유 지분 23.29% 중 3.29%를 매각하면서 20%로 줄어들었다.

순환출자 구조가 곧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근간인 데다 정 회장의 주요 계열사 지분율이 아직은 낮은 만큼 향후 추가적인 지배구조 개편 없이는 지배력 약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2018년 3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다. 현대모비스를 투자·핵심부품 사업과 모듈·AS 부품 사업으로 인적 분할한 뒤 모듈·AS 사업부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고, 현대모비스 존속법인을 그룹 지배회사로 남겨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당시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의 주식 약 1조원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계 헤지펀드 운용사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반대로 무산됐다. 엘리엇이 분할·합병 비율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 등을 이유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외국계 주주들도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결국 현대차그룹은 자발적으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중단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과거 이해관계자들과의 마찰로 지배구조 개편이 한 차례 무산된 만큼 개편안을 얼마나 정교하게 보완해 시장의 공감을 얻어내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배회사 체제’ 재시도할까…지분 직접 매입 가능성도

현대차·기아 양재 본사.<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기아 양재 본사.<사진제공=현대자동차그룹>

지난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열쇠로 꼽히던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 철회 이후 재계에서는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 중 가장 유력한 방안은 현대차그룹이 2018년 추진했던 지배구조 개편안처럼 현대모비스를 최상위 지배회사로 두는 방식이다. 현대모비스를 투자 사업과 모듈·AS 사업으로 인적 분할해 두 법인 모두 상장을 유지하고, 정 회장 등 총수 일가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모듈·AS 사업 지분과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기아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 투자 사업 지분과 교환하는 것이다. 이 경우 기아가 현대모비스 모듈·AS 사업과 현대글로비스의 1대 주주가 돼 두 회사의 합병을 추진할 수 있고,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 투자 사업에 대한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게 돼 순환출자 고리 해소도 가능해진다.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각각 존속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존속회사는 존속회사끼리, 사업회사는 사업회사끼리 합병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와 함께 정 회장 등 총수 일가가 기아,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직접 매입하는 방안 등도 언급된다. 이는 별도의 지배구조 개편 없이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세금을 포함하면 최소 6조원 이상의 실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의 지분 매입을 위한 실탄 확보 차원에서 현대글로비스 등 계열사의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과거의 실패 사례를 감안해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병훈 기자 / andrew45@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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