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국가 경제와 전 산업군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사실상 제로금리에 가까운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며 금융 산업 역시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아울러 연초부터 잇따른 사모펀드 사태는 금융사의 신뢰도 역시 바닥으로 내몰았다.
그럼에도 국내 금융권을 대표하는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는 안정된 경영권을 바탕으로 비은행 부문의 강화와 함께 디지털 혁신과 미래 성장 가치 등을 확장하며 실적을 지켜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ESG(환경, 사회적 책임, 기업 지배구조) 경영까지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한국판 뉴딜 사업’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종규 KB금융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김광수 전 NH농협금융 회장(현 은행연합회장)이 올해 들어 연임에 성공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경우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여파로 인한 국내외 경제 혼란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경영권을 바탕으로 실적을 지켜냈다. <사진=각사>
◇ DLF, 라임자산운용 등 잇따른 사모펀드 사태에 멍든 금융권
올 한해 금융지주를 가장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 중 하나는 ‘사모펀드 사태’다. 환매 중단으로 대규모 소비자 피해를 일으킨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S)과 파생결합펀드(DLF)는 물론 라임자산운용펀드, 옵티머스펀드, 디스커버리펀드,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 등까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이 예정된 것만 하더라도 무려 10여건에 달한다.
상품 자체의 부실과 금융권의 불완전판매 등이 더해지며 피해액이 조 단위를 훌쩍 웃도는 상황에서 금융지주와 은행, 증권사 본사는 물론 국회, 금융당국 앞까지 피해자 집회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신속한 피해 해결은커녕 조사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사모펀드도 상당한 것이 현실이다. 금융감독원의 배상 조정안이 나오더라도 이는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수용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금융사에 달렸다.
사모펀드 사태로 인한 피해가 이어짐에 따라 소비자들은 잇따라 등을 돌렸고 금융권의 신뢰도 역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실제 올해 금융권의 신탁, 투자일임 및 운용, 증권대행(펀드판매), 대리사무취급(방카슈랑스) 등 자산관리(WM)와 관련한 성과는 작년과 비교해 거의 바닥에 가까운 상태다.
이 부문의 실적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비이자이익은 3분기 들어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였지만 지난 1분기의 경우 작년 동기 대비 최대 46.8% 수준까지 하락했다. 조보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실제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대형 은행지주사 순영업수익에서 4~8%를 차지하던 판매수수료(펀드·방카슈랑스·신탁) 비중은 올 상반기 3~6%로 위축됐다”며 “단기간 내 의미 있는 개선세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금융지주는 은행 계열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소비자보호정책을 내놓으며 어느 때보다 신뢰도 회복에 힘을 쏟았다.
KB국민은행은 소비자보호본부를 신설하고 소비자 보호 권익 강화 자문위원회를 설치했다. 신한은행은 소비자보호, 투자상품서비스(IPS)본부를 그룹으로 재편하고 금융소비자보호 오피서 제도를 시행했다. 하나은행의 경우 은행권 최초로 ‘투자상품 리콜제(책임판매제도)’를 도입하고 IPS본부를 신설했다. 우리은행 역시 은행장 직속 금융소비자보호그룹 운영과 그룹 차원의 금융소비자보호조직을 새로 만들었다.
그러나 금융지주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신뢰도와 실적 회복뿐만이 아니었다.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책임을 금융사로 돌리고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중징계를 내림에 따라 경영권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위와 금감원은 지난 3월5일 DLF 판매 은행인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에 각각 6개월간 사모펀드 신규판매 업무 정지 제재를 내렸다. 이와 함께 각각 167억8000만원, 197억1000만원의 과태료 부과도 통보했다. 당시 두 은행의 행장을 맡고 있던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에 대해서도 중징계(문책경고)를 내렸다.
중징계를 받을 경우 임기 만료 이후 최대 5년간 금융회사 취업에 제한이 생긴다. 이에 같은 달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던 손 회장의 연임이 당장에 불가능해졌고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의 경영권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앞섰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에 이어 유력한 차기 회장후보로 손꼽히던 함 부회장 역시 차후 경영권 획득에 있어 제동이 걸리며 하나금융의 경영 구도 역시 지속적으로 구설에 휘말렸다. 피감기관인 금융사 입장에서는 제재에 불복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손 회장과 함 부회장은 금감원이 내린 징계의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이유로 법원에 집행 중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상 내부 통제 기준 마련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금감원이 최고경영자를 제재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 골자다.
당시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임원의 제재 조치에 추상적·포괄적 사유만 제시해 구체적·개별적인 기준이 없다”며 “징계사유의 비행 정도에 비해 균형을 잃은 과중한 징계처분을 선택할 경우 재량권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결하며 두 경영진의 손을 들어줬다.
이를 놓고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관리 소홀로 인해 금융사고가 발생한 점은 회피하고 금융사에만 책임 소재를 전가한다고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업무 등의 수행이 주 업무인 금감원이 관리·감독 부실로 인해 금융 사고를 초래한 측면이 있음에도 실질적인 책임은 금융사에만 떠넘겼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이번 사태의 내면에는 2015년 금융위원회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 최소 투자금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추고 사모 운용사 진입 요건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변경하는 등 규제를 대폭 완화한 점이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감독 권한의 오·남용 논란과 인사 개입 의혹은 금융권을 넘어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송언석 미래통합당 의원은 6월 26일 금감원 제재심의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재심의위가 금감원장이 임명한 민간위원들로 운영되는 만큼 제재안의 결정이 사실상 금감원의 판단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어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방안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개정안은 제재심의위의 근거를 법률로 명확히 규정하고 금융위원장과 유관기관 및 단체의 추천을 통해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에도 최근 금감원은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의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신한금융투자, 대신증권, KB증권 등 판매사에게 전반적으로 중징계 처분을 내려 또 한 번의 대규모 행정 소송을 야기하기도 했다.

5대 금융지주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 현황 <자료=각사>
◇ 연임으로 지켜낸 경영 안정 덕에 실적도 ‘맑음’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여파는 국내외 경제는 물론 금융산업 역시 위태롭게 만들었다. 은행을 중심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사실상 제로금리에 가까운 저금리가 현실화됨에 따라 이자이익 하락으로 인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은행의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대출 증가로 인한 연체율과 예대율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는 곧 금융지주 전체의 실적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 금감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의 3분기 NIM은 1.4%로 지난해보다 0.15%포인트 하락하며 역대 최저치를 또 다시 경신했다. 특히 5대 금융지주 은행 계열사의 NIM 역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추세다. 세부적으로 △KB국민은행 1.49% △신한은행 1.36% △하나은행 1.33% △우리은행 1.33% △NH농협은행 1.67%(카드 제외 1.49%) 등으로 전 분기와 비교해 최대 0.04%포인트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5대 금융지주는 코로나19로 인한 금융지원에 적극 나섰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이유에서다.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은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수차례 직접 만나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긴급 대출 등 실물부문 금융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아울러 기간산업 협력업체 지원 프로그램과 대출 만기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조치 등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지난 여름에는 집중 호우로 인한 금융지원까지 적극적으로 펼쳤다. 금융지주를 선두로 은행, 카드, 보험사 등 너나 할 것 없이 전 금융사가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했다.
사모펀드 사태에 코로나19까지 겹쳤지만 금융지주의 실적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올 3분기까지 무려 4개 금융지주가 작년 동기와 비교해 당기순이익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이 기간 농협금융지주는 4.8%, KB금융지주는 3.6%의 성장을 이뤘다. 하나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 역시 각각 3.2%, 1.9% 성장하는 성과를 냈다. 이는 다양한 포트폴리오 구축으로 인한 비은행부문 성과에 따른 결과다. 은행의존도를 낮춘 덕에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올해 KB금융은 푸르덴셜생명의 자회사 편입을 통해 상대적으로 타 계열사에 비해 부진했던 생명보험업의 경쟁력을 확대했다. 신한금융 역시 내년 7월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를 통합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보험업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신한생명의 자회사형 GA(독립법인대리점) ‘신한금융플러스’의 출범과 대형 GA인 리더스금융판매 인수 등의 이슈를 더했다. 하나금융 역시 인수 작업을 진행했던 더케이손해보험을 하나손해보험으로 새롭게 출범했으며, 최근 우리금융도 아주캐피탈의 자회사 편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금융지주가 이 같은 경영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안정된 경영권이 비롯됐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실제 올해 5대 금융지주 중 하나금융을 제외한 4개 금융지주의 회장이 연임을 결정지으며 안정적인 경영권을 획득했다. 올 초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3년의 임기를 추가로 획득했으며,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역시 지난 3월부터 3년의 임기를 또 한 번 보장받았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역시 지난달 연임에 성공하며 향후 3년간 KB금융을 이끌게 됐다. 김광수 농협금융 회장의 경우 현재는 은행연합회로 자리를 옮겼지만 지난 4월 1년의 임기를 추가로 보장받으며 2020년 한 해 농협금융의 성장을 이끌었다.

5대 금융지주 '한국판 뉴딜 정책' 지원 현황 <자료=각사>
◇ ESG경영‧디지털 혁신 전략…한국판 뉴딜정책 적극 동참
금융지주의 올 한해 대표적인 경영 전략은 크게 디지털 전환(DT)과 ESG(환경, 사회적 책임, 기업 지배구조) 경영 확대로 대표된다. DT 추진으로 혁신을 추구하는 한편으로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ESG경영에 힘을 쏟겠다는 구상이다. 실제 금융지주의 수장들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속 강조하고 있는 디지털 혁신과 더불어 ESG 경영을 향후 미래 성장 가치로 손꼽기도 했다.
우선 ESG 경영에 있어 가장 적극적인 KB금융그룹의 윤종규 회장은 “KB금융은 글로벌 경기 둔화와 금융시장 불안 등 국내외 위기상황 속에서도 ESG 경영을 통한 지속가능한 가치 창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며 “앞으로도 ESG 선도기업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더욱 강화하고 사회적 변화와 미래가치 창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기후변화 전략 고도화를 통한 ‘그린 리더십(Green Leadership)’ 확보 △책임 경영 내재화를 통한 가치 창출 확대 △투명한 기업지배구조 확산을 통한 ESG 경영 선도 등 세 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역시 “‘일류신한’이 추구하는 지속가능 경영의 목표는 ‘금융으로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미션 사상을 바탕으로 모두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라며 “차별화 된 방식의 사회책임경영을 통해 고객과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지원하는 금융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친환경 경영 △상생 경영 △신뢰 경영 세 가지 방향에서 ESG 추진체계를 정교화 하겠다고 밝혔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도 글로벌 눈높이에 맞는 지속가능경영을 위해 UN SDGs와 연계한 ESG경영 로드맵을 설정하고 금융의 사회적 책임에 앞장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시행하기 위한 세부 경영 전략은 △포용적 금융 △미래세대 육성 △취약계층 지원 △메세나 확산 △환경 보존 등 크게 5가지 영역이다. 그는 “최근 발표된 한국형 뉴딜 정책의 핵심축인 ‘그린뉴딜’이나 ‘안전망 강화’에 금융권의 적극적인 지속가능경영 활동이 뒷받침된다면 정부와 기업, 국민이 함께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경쟁력 있는 모델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역시 “휴매니티(Humanity)를 기반으로 이해관계자와 진정성 있는 소통과 지속 가능한 전략을 통해 기업 궁극의 목적인 이익 추구와 더불어 공동체와 상생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ESG경영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를 위한 사회가치 금융 중장기 전략으로 △미래금융 선도 △신뢰받는 기업 △상생하는 금융의 3가지 테마를 설정했다. 아울러 이를 다시 UN SDGs와 연계해 △손님이 행복한 금융 △미래를 여는 금융 △금융리더로 성장하는 하나인 △윤리를 실천하는 하나인 △함께 성장하는 금융 △행복을 나누는 하나인 등 총 6가지 키워드를 중요 이슈로 선정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판 뉴딜 정책’과도 부합한다. 이 정책은 ‘그린 뉴딜’과 ‘디지털 뉴딜’을 양대 축으로 삼고 5년 동안 160조원을 투입해 19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5대 금융지주는 총 65조5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의 지원사격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울러 지난 9월3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만나 한국판 뉴딜의 성공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추가적으로 모색하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타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중‧장기적인 투자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국가적 과제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투자와 우량기업 유치 등 그룹의 신성장 동력 발굴 기회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에 코로나 이후 펼쳐질 뉴노멀(New Normal)에 대응하는 향후 플랜으로 삼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유수정 기자 / crysta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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